옥파 신필영의 「렬상기행절구」 연구

신필영이 교유했던 서유구(徐有榘)ㆍ홍석주(洪奭周)ㆍ홍길주(洪吉周)ㆍ정학연(丁學淵)ㆍ윤정현(尹定鉉)ㆍ김영작(金永爵)ㆍ박규수(朴珪壽)ㆍ홍우길(洪祐吉)ㆍ홍우건(洪祐健)ㆍ김상현(金尙鉉) 등은 대체로 18세기의 실학적 학풍을 계승하면서 문학적으로 서로 친밀하게 교유했던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들이었다.
「열상기행절구」는 신필영이 1846년 8월(음력)에 한강의 동호(東湖)와 남한강(南漢江) 일대를 여행하면서 지은 7언 절구 100수의 연작 기행시이다. 신필영은 평소 국내 여행을 즐겨 다니면서 다양한 기행시를 남겼다. 그중 특히 「열상기행절구」는 그의 시세계의 특징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회고시(懷古詩), 산수경물시(山水景物詩), 회인시(懷人詩), 만시(輓詩), 도망시(悼亡詩), 기속시(紀俗詩), 농촌시(農村詩) 등 다채로운 양식의 시들을 집대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양식별 특징에 의거하여 작품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먼저 신필영은 회고시와 산수경물시를 통해, 유하정(流霞亭), 남한산성(南漢山城), 춘초정(春草亭), 둔촌서원(遁村書院) 등 한강변 역사ㆍ문화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전고(典故)와 회화적 기법를 활용하여 팔당(巴堂), 남자주(藍子洲), 두릉(斗陵), 용문산(龍門山) 등지의 정경미(情景美)를 묘사해내었다.
다음으로 그는 회인시와 도망시를 통해, 작고한 홍길주, 김매순, 서유구, 신익성(申翊聖), 자신의 처 연일(延日) 정씨(鄭氏) 등 부재(不在)한 인물들을 추모하였다. 비창(悲愴)한 심정을 곳곳에서 토로하여 작품의 서정성을 강화하였으며, 성묘(省墓) 여정을 추가함으로써 한강 유람을 위주로 한 이 시의 내용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었다.

17·18세기 결부제의 폐단과 숙종조 황해도 방전법 시도

비록 방전법은 황해도 3개 읍에서 시험 시행되었을 뿐, 확대 시행되지 못하였으나, 봉건 해체기에 접어든 집권적 봉건 국가의 잔존한 봉건적인 지배를 일소하며 正經界·均賦均稅를 지향했던 개혁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경자양전의 타량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보다 정확하게 토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방전법은 좌절 이후에도 탁월한 양전 방식으로 조정에서 거론되었고, 19세기 정약용·서유구·김윤식·유치범·유진억·이기 등의 방전론으로 이어져 광무양전 논의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인물 중심의 한국음악사 지도 방안 : 풍석 서유구를 중심으로

고악보「유예지」의 저자인 ‘서유구(1764~1845)’를 주목하였다. 조선 후기 음악의 모습은 악곡의 형성과 변화가 기록되어 있는 고악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가 남긴「유예지」는 조선후기 19세기 초 가곡, 영산회상 등의 정악의 발전 양상과 계면조의 변화 과정, 그 당시 풍류방에서 연주되었던 악기와 악곡의 모습을 담고 있어 조선 후기의 음악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 한국음악사의 조선 후기의 음악의 모습을 담고 있는「유예지」의 저자 서유구를 중심으로 하여 조선 후기의 시대적 배경과 음악관을 연구하였으며, 이를 인물 학습 수업 모형에 적용하여 수업의 실제로 제시하였다.